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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분관 청계천박물관(관장 사종민)은 기획전시 '준천, 영조와 백성을 잇다'를 개최한다. 개막식은 8월 25일(금) 오후 3시 청계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오는 11.5(일)까지 일반인에 전시한다.

청계천박물관은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생태를 중심으로 한 장소 기반의 박물관이자 청계천 전문 박물관으로서 청계천의 역사와 관련된 주제로 다양한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강의 운영과 관련된 정책이 중요한 만큼 조선시대 한양에서도 개천(현재의 청계천)의 관리와 정책은 중요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번 청계천박물관의 기획전을 위해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준천계첩』을 구입하였고, 이외에 알려진 7점의 준천첩을 일부 복제하여 현재까지 공개된 모든 준천첩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도시 한양의 운영에 개천 관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고 영조 대 준천이 전격적으로 실시되게 된 시대적·사회적 배경과 그 진행 과정에 대하여 전시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제 : 한양의 인구증가와 개천

조선후기가 되면서 한양은 상업도시로 발전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주민이 몰리면서 거주지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되었다. 특히 개천 주변에는 도시의 빈민들이 몰려들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거주민의 증가로 개천 주변에는 생활쓰레기의 증가, 주변 산에서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한 토사물의 유입 등으로 인해 개천 바닥의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이로 인해 개천은 비만 오면 범람하여 한양의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두 번째 주제 : 영조의 백성을 위한 준천

영조는 당쟁으로 혼란한 시기에 왕위에 올라 애민군주로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친다는 명분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개천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준천을 실시하여 해결하려고 하였고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준천을 반대하던 신하들과는 끈질기게 대화하여 결국 추진하였다

영조의 준천은 크게 경진년庚辰年(1760년)과 계사년癸巳年(1773년)에 진행되었다. 경진준천 때는 천변까지 차오른 토사물을 걷어내고 개천의 배수구인 오간수문을 보수하였고, 계사준천 때는 개천의 둑을 돌로 교체하였다.

영조가 실시했던 준천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백성이 많았고, 별도로 임금을 주고 인부를 고용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낮추었다

영조는 준천을 향후 지속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준천을 추진한 배경과 과정을 기록한『濬川事實』을 편찬하였고, 전담 기구로 준천사濬川司도 설치하였다. 그리고 본인 대에 이루어진 준천을 그림으로 남겨 후세에 전해지도록 하였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여러 종류의『준천첩濬川帖』이다.

세 번째 주제 : 지속된 준천

영조 이후에도 준천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2~3년을 주기로 실시되면서 한양의 기본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개천 관리와 준천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한양 운영의 중요한 요소이자 민본정치民本政治 이념을 백성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종민 청계천박물관장은 "도시하천에는 물 뿐만 아니라 도시에 대한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온 청계천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토․일․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청계천박물관 홈페이지(http://cgcm.museum.seoul.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m.emone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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